광안리해수욕장은 해운대해수욕장과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해수욕장이다. 해양수산부 자료에서 한국인이 많이 찾는 해수욕장 3위를 차지했다. 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동 소재이며, 해수욕장 좌우의 끝 쪽은 남천동과 민락동에 속해있으며, 해변 맞은편에는 부산의 랜드마크 광안대교가 자리 잡고 있다.
광안리해수욕장 개요
해수욕장 이름은 옛 행정구역명인 경상남도 동래군 남면 광안리가 그대로 내려온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광안리라는 이름이 탄생한다. 당시에는 이 지역이 해안과 모래펄을 가진 곳이라서 ‘넓을 광(廣)’ 자에 해안을 뜻하는 ‘안(岸)’ 자를 붙여서 광안이라 이름 붙였는데, 이후에 풍수상으로 ‘편안할 안(安)’ 자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하여 광안(廣安)으로 표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상태로 부산광역시에 흡수되면서 광안리는 이름 그대로 동으로 승격하게 된다.
모래사장의 총면적은 82,000㎡, 길이는 1.4km, 폭은 25m ~ 110m 이며 해마다 8월이면 부산 바다축제, 10월의 부산불꽃축제를 이곳에서 한다. 이 때의 광안리는 바가지 천국이다.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대회도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매년 치러지는 장소였으며, e스포츠인들에게는 인지도 있는 해변이다. 이런 특징들 덕분에 장충체육관, 서울어린이대공원, 올림픽공원, 사직실내체육관, 인천삼산월드체육관, 염주종합체육관, EXCO, BEXCO, 잠실실내체육관, 서울특별시교육청 학생체육관, KINTEX와 함께 야외 e스포츠 장소의 메카로 떠올랐다. 광안리에 대한 시선이 바뀐 것은 2003년 광안대교 완공 때부터다. 7,420m에 걸친 바다 위 다리의 장관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다시 광안리로 모여들었다. 여기에 광안리 특성을 살려 보드 위에서 노를 젓는 패들보드(paddle board) 특화지구 조성을 추진했다. 아침엔 바다 수면 위 보드에 앉아 요가를 하고, 저녁엔 노을을 감상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이게 전국 서핑족들에게 제대로 먹힌 것이다.
해수욕장 연혁
광안리는 본래 해수욕장이 아닌, 멸치 등 고기잡이를 하던 어촌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에 이르러 여름 방학이 될 무렵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심신을 단련시키기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즉, 동네 앞바다를 수영장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던 것이 해수욕장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후 송도와 해운대에 몰리던 해수욕객들이 광안리에도 해수욕객이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이후 점차 다른 지역에서도 피서객이 모여들자 1950년대에 해수욕장으로 정식 개장한다. 특히 바로 옆에 있던 수영해수욕장이 수영비행장 공사 등으로 점차 작아지면서, 반대급부로 광안리해수욕장이 커지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광안리의 개성이 나타나게 되는데, 바로 주택가와 해변가가 혼재되기 시작한 것이다. 위에서도 적었듯이, 처음부터 휴양지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 주택가 주변에 있는 해변가에 해수욕장 기능을 부여한 결과였다. 특히 70년대를 기점으로 수영구가 개발되면서 인구가 몰려들자, 광안리는 접근성이 좋은 주택가 주변의 해수욕장이 되어갔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광안리가 현재의 모습으로 변화하게 된 것은 바로 간척사업이다. 1970년대부터 광안리에 간척사업이 시작되었고, 이 과정에서 남천동에 있던 중골산을 없앤 후에, 이 과정에서 얻은 흙으로 남천동과 민락동에 간척사업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남천동에는 1980년대 최고의 부촌 중 하나인 남천 삼익비치가 들어섰고, 민락동은 재래식 어항과 구시대적 횟집이 가득했던 어촌을 없앤 후에 현대적 어항과 민락회센터, 민락회촌, 민락회 타운의 부지를 확보한다. 이 부지를 확보하면서 80년대를 거쳐 9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는 구시대적 시설은 거의 사라지고서, 현대적 수산시설을 확보한다. 이 과정에서 지금 광안리 해수욕장의 명소인 민락수변공원도 완성된다. 그렇게 90년대를 거치면서 지금의 광안리 해수욕장이 모습이 되었는데, 여기에 광안리 해수욕장의 가치를 크게 높이는 광안대교 건설이다. 1995년부터 시작된 광안대교 건설공사가 2003년 완공된다. 이와 동시에 해운대와 크게 차별화할 요소를 확보한 광안리 해수욕장은, 이전에는 음식점들을 중심으로 한 지역민의 공간에서 전국구 해수욕장으로 크게 성장하게 된다.
주요 특징
온통 호텔과 식당, 유흥업소 일색인 해운대와 달리 해변 주변은 주로 주택가로 형성되어 있으며 1990년대까지만 해도 상권은 광안 회센터 근처에 많이 몰려있었다. 2000년 들어서 광안대교가 개통되어 특유의 경치가 완성되면서 입소문이 퍼져 해변 전역에 카페가 늘어나고 상권이 바글바글해졌고 해변 주위가 재개발되었다. 최근에는 식당들과 호텔들도 많이 들어섰다. 일제강점기 때에 부산의 대표 해수욕장은 송도해수욕장이었고, 해운대는 당시 교통 수준으로는 너무 외곽지역이라 21세기의 명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돋보였으나 그래도 조선팔경으로 꼽힐 정도였던 데다 온천까지 있는 등 교통 문제만 해결되면 휴양지로 엄청 발전할 것으로 기대되는 곳이었는데 동해남부선 철도 개통으로 현실이 되었다. 광안리는 애초부터 휴양지로 개발될 것을 목표로 해수욕장을 개장한 곳이 아닌 어촌에 해수욕장 기능을 부가적으로 추가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민락동에는 아직도 꽤 큰 수준에 어항(漁港)이 있고, 남천동에는 1990년대까지 해수욕장과 바로 붙어있는 쪽에 어선 선착장이 있었다. 현재 해운대에 있는 어항(漁港)인 미포항과 광안리의 민락포구와 비교하면 그 규모 차이가 엄청 나는데, 일제강점기 전까지는 광안리와 해운대가 같이 어촌이었으나, 광안리가 어촌으로서 성격을 더 오래 유지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에는 민락포구에 어민들이 직접 좌판을 깔고, 그 날 잡아온 물고기를 팔기도 했다. 도심 속에 위치한 붐비는 해변임에도 불구하고, 생태계가 잘 구축되어 있다. 어민들이 괜히 해수욕장 개장 이후에도 떠나지 않고, 어업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광안리 해변에서는 점성어와 문어, 보리멸, 장어, 도다리가 나오고, 민락어항 쪽으로 자리를 옮기면 갈치, 개상어, 전갱이 우럭, 놀래미, 학공치 등이 잡힌다. 단순히 잡힌다가 아니라 점성어는 미터급도 나오고, 우럭은 40cm급 개우럭도 나오는 수준이다. 도심 속 해수욕장이란 걸 생각하면, 어자원이 상당히 풍부한 곳이다. 다만 해수욕장 쪽은 낚시 금지이다. 1980년대 당시의 대연삼익비치, 남천삼익비치, 남천삼익타워 아파트는 부산 최고의 부촌으로 통하던 아파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