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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개요, 역사적 배경, 특산물 및 해녀

by dangdang999 2023. 7. 14.

제주특별자치도 역사의 기원은 석기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대 사람들은 동굴이나 바위 그늘 주거지에서 생활하였으며, 유물로는 타제석기, 골각기 등이 발견되고 있다. 이후 청동기, 철기시대의 유물, 유적으로 고인돌, 마제석기, 토기, 옹관묘 등도 도내 전역에 분포되고 있어 제주특별자치도 역사의 기원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사진은 해녀들이 물질하러 바다에 들어 가는 사진이다.

 

제주도의 개요

제주의 옛명칭은 도이, 동영주, 섭라, 탐모라, 탁라 등으로 불리어 왔다. 이들 명칭중 '동영주'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섬나라' 라는 뜻이다. 제주도의 개벽신화인 3(三姓)신화에 의하면 태고에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乙那)' 라고 하는 삼신인(三神人)이 한라산 북쪽 모흥혈(毛興穴:현재의 삼성혈) 이라는 땅 속에서 솟아나와 가죽옷을 입고 사냥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이들 삼신인들은 '벽랑국(碧浪國)' 에서 오곡의 씨앗과, 송아지, 망아지 등을 갖고 목함을 타고 제주특별자치도 동쪽해상으로 들어온 삼공주를 맞아 혼례를 올렸다. 이때부터 이들은 오곡의 씨앗으로 농사를 짓고 소와 말을 기르며 살기 시작했다. 그후 '고을나'15대 후손 3형제 (, , )가 당시 한국의 고대왕조의 하나인 '신라'(B.C 57~A.D 935)에 입조(入朝)하여 '탐라'(제주특별자치도의 옛명칭) 라는 국호를 갖게 되었고, 또 이때부터 '탐라''신라'를 섬기게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이 탐라국은 고구려, 백제 및 신라로 분열된 삼국시대에는 이들 나라들과 독자적으로 혹은 그에 예속되어 있으면서 외교관계를 맺어왔다. 이러한 관계는 그 후 고려 시대에도 계속되면서 탐라국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의 맥을 이어왔다. 1105년에는 고려의 행정구역인 탐라군으로 바뀌었으나, 왕자의 지위는 그대로 존속되어 실질적인 탐라의 통치자 역할을 하였다. 제주는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 2007년 세계자연유산, 2010년 세계지질공원 인증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자연과학분야 3개 분야를 동시에 달성한 지역이다. 또한 제주는 세계적 자연경관의 모든 테마(, 화산, 폭포, 해변, 국립공원, 동굴, )를 모두 갖추고 있다.

 

역사적 배경

제주는 180만년 전부터 10만년 전까지 여러 차례의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졌다. 1만여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수면이 높아지면서 제주는 육지와 분리되어이 되었다. 제주의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사냥과 채집, 어로 활동을 하며 살았다. 독립국인 탐라국이 있었으며, 탐라국은 원나라를 제외하면 한반도 왕조에 속해있었는데 백제 부용국 통일신라 속국 고려 속국 고려에 사실상 합병 삼별초 근거지 원나라에 합병, (정동행성) 탐라총관부 고려 환속 조선의 한 지역 대한제국을 거쳤다. 그리고 탐라국은 938년 평화적으로 왕조를 닫게 되었지만, 나라의 지위는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105년 고려에 의하여 탐라군으로 격하되면서 나라의 지위가 없어졌다. 조선 초 태종 때 탐라국 체제를 폐지하고 전라도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의 세 행정구역이 설치되어 완전하게 중앙정부의 지휘를 받는 행정구역이 되었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유배지로 이름이 난 지역이 되었다. 고려 조정의 경우에는 소수에 그쳤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건국에 반대한 고려 신하들을 유배보내기 시작하여 태종의 비 원경왕후의 두 동생인 민무구, 민무질 형제가 조선 최초의 제주 유배자였다고 한다. 이후 왕족이나 유력 정치인의 단골 유배지로 활용되었고 대표적으로 광해군, 소현세자의 아들들, 송시열, 김정희, 최익현이 있고 조선시대에 제주로 유배된 사람은 대략 300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제주도 뱃길이 매우 위험하여 가다가 풍랑으로 죽는 경우도 있었으니 제주목사로 발령받은 관리는 사임을 할 정도로 가기를 꺼리는 오지였으나, 하지만 탐관오리들에게는 인기인 지방이었다. 중앙의 입김이 잘 미치지 않기 때문에 일단 백성들 쥐어짜서 부정축재하기에 좋고 경치가 좋으니 놀러 다니기도 좋고 또 소목장이 있어서 쇠고기 먹기도 좋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조선은 농본국가라 소 금살령이 자주 내려져서 벼슬아치들도 쇠고기 먹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물론 제주도 소는 정부 소유라 함부로 잡으면 안 되지만 자연사한 소라고 허위 보고하고 몰래 잡아 먹었다. 거기에 덧붙여 귀한 한약재였던 우황 역시 짭짤한 부수입 거리였다. 더군다나 주로 기르던 소는 제주 토종 흑우로 진상품이었다. 조선 후기인 1735466세의 나이로 제주목사로 임명된 김정(1670~1737)은 유생과 아이들을 교육을 위해 삼천서당을 지으면서 목장지의 토지 일부를 재정으로 지급하여 학생들의 교육 밑천을 마련하였고 화북포구를 넓히는 등의 조치도 취했다. 1555년에는 왜구들이 제주도를 약탈 거점으로 삼고자 제주도를 대대적으로 침공한 을묘왜변이 일어났으나 다행히 제주목사를 비롯한 민관군이 합심하여 왜구를 격퇴하였다. 이후에는 을묘왜변의 사례를 참고하여 제주도에 상당한 육군과 수군 병력을 배치하였으나, 막상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제주도는 건드리지도 않아서 조선 영토 중 유일하게 평화로운 지역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전쟁 명분이 중국으로 가는 육상 통행권이라서 일본이 제주도를 점령할 이유가 없었던 것으로, 나름 조선과 협상할 때 유리한 주장이라도 하려던 정치적인 계산을 한 걸로 보인다. 물론 그전에 명나라가 개입해서 패전했지만, 그래서 임진왜란 내내 제주도는 본토에 대한 식량 등 물자 지원에 집중하였다. 당시 제주 목사인 이경록이 제주도 병력을 본토에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조정에 보냈으나, 조정에서는 뜻은 좋지만 제주도의 방어도 중요하다며 이를 반려시켰다. 또한 김만일이라는 사람은 조정에 제주마 500여 필을 헌납하여 헌마공신이라는 칭호를 받기도 하였다. 또한 출륙금지령도 큰 고통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왜구가 소탕됨에 따라 제주도가 평화로워지면서 호적상 인구가 1만 명에서 6만 명으로 급속히 증가하는 시기를 겪었고, 이에 따라 인구가 과밀해지자 조정에서 실업자는 삼남지방, 범죄자는 평안도와 함경도로 이주를 보낼 정도였지만 16세기부터 17세기까지 공납이 늘어나게 되면서 사회문제로 떠올랐고 희귀한 특산품이 많은 제주도의 특성상 제주도가 그 피해를 직격으로 받았다. 늘어나는 공납부담에 제주도민들이 삼남지방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바람에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인구감소 문제가 심각해지자 결국 인조대인 1629년 제주도민은 아예 본토로 이주가 금지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출륙을 금지하는 수준이었지만 그럼에도 본토로 이주가 이어지자 배를 만드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어선 대신 뗏목인 테우를 써야했고, 때문에 과부 숫자가 더더욱 늘어나게 되었고 조선 중후기의 제주도는 사실상 감옥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정조 때 최초로 김만덕이 흉년에 재산을 내어 제주도 사람들을 구휼한 공로로 국가에서 육지여행을 허락한 바 있다. 출륙금지령이 풀리게 된 것은 순조 시기인 1823년에 이르러서였다. 1945년 광복 이후 194681일 군정법령 제94호에 의해 제주도()는 전라남도에서 분리 제주도()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제주도 설치와 함께 남북을 분할하여 북제주군, 남제주군 2개 군을 설치하면서 1-2-1-12면 체제가 되었다. 현재의 제주특별자치도와 비교하면 북제주군이 지금의 제주시이고 남제주군이 지금의 서귀포시인 셈이다. 1948년부터 1954년까지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 4.3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6.25 전쟁 중이던 1951, 유엔군사령부와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38선을 돌파한 중공군이 남진을 계속하여 금강 부근까지 내려올 시, 대한민국 정부를 제주도로 후퇴시킬 극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2의 국부천대. 그 이전에 미국은 북한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위협할 때도, 한반도가 함락될 경우 남은 한국인들을 서사모아 등지로 보낼 계획을 세우기도 했었다. 이 계획이 실행되지 않은 것은 물론 유엔군이 중공군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지만, 제주도를 대만화하기에는 제주도의 면적이 너무 작았던 탓도 있다. 1955년 북제주군 제주읍이 제주시로 승격되었고, 1956년엔 한림면이 한림읍으로 승격되면서 남부지방은 한경면으로 분리되었다. 또한 서귀면이 서귀읍으로, 대정면이 대정읍으로 승격되었다. 이때까지 기초자치단체가 시-군 체제가 아니라 시--면 체제였다. 나중에 19615.16 군사정변으로 시-군 체제로 바뀌고 읍-면은 하위지역으로 격하되었다. 19615.16 군사정변으로 수립된 박정희 정부가 제주도를 관광지역으로 개발해보고자 여러 가지 개발정책을 추진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1970년대 연동과 노형동 일대에 세워진 신제주 도심이다. 그리고 수도공급용으로 어승생악 수원지를 만들었고 어업활동도 장려하였다. 1980년 애월면이 애월읍으로, 구좌면이 구좌읍으로, 성산면이 성산읍으로, 남원면이 남원읍으로 승격되었다. 1981년 남제주군 서귀읍과 중문면이 서귀포시로 승격되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각각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의 정 중앙에 있었기 때문에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은 행정구역이 동서로 분리되는 모양을 취하게 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전면 부활하면서 첫 민선 도지사로 신구범 후보가 당선되었고 이후 우근민과 김태환이 번갈아가면서 도지사를 맡아 제주판 3김으로 군림하였다. 이후 2014년 원희룡 후보의 당선으로 제주판 3김 체제는 깨지고 2018년 원희룡 도지사의 재선, 2022년 오영훈 후보의 당선으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제주도는 현재 한국 최고의 관광지로 발전하였고 대규모 관광개발을 해서 더욱 발전시켜보자는 당시 중앙정부의 주도로 200671일 높은 자치권을 보장받는 특별자치도로 출범함과 동시에 제주시와 북제주군이 제주시로,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이 서귀포시로 통합되고, 지방자치권을 갖는 한반도 본토의 일반적인 시()와는 달리 제주특별자치도 산하 단순 행정기구에 불과한 행정시가 되었다. 행정구(일반구)와 같은 형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시장 선거도 하지 않고 지방의회도 존재하지 않으며,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시장들을 임명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부터 현재까지 타국 군에 점령당한 적 없이 온전히 대한민국의 영토로서 기능해 온 지역 중 하나이다. 다른 지역으로 6.25 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 동남쪽에 위치해있었던 영남지방, 울릉도와 독도, 그리고 전라남도 신안과 진도 등이 있다. 다른 지역은 최소 한 번 이상씩은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적이 있다. 2022831일 기준으로 제주도의 인구가 외국인 포함 70만 명을 돌파하였다.

 

제주 특산물

예부터 제주는 삼다도라하여 돌이 많고, 바람이 많고, 여자가 많다고 하였다. 또한 삼무하고 하여 도둑, 거지, 대문이 없다고 했습니다만, 오늘의 제주에는 감귤, 고사리, 갈치, 옥돔, 자리돔, 돼지고기, 말고기 등이 주요 특산물이다.

알카리성 식품인 감귤은 비타민C를 다량 함유하여 신진대사를 원활히 하고 피부와 점막을 튼튼이 하여 감기 예방에 좋은 것은 물론 피부미용과 피로회복에도 좋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사리는 중산간 지역의 습한 곳에서 많이 생산된다. 특히, 크고 굵지만 매우 연하고 부드러워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제주 고사리는 궐채라하여 임금님께 진상하는 뛰어난 자연식품이다. 옥돔은 고급어종으로 과거에도 비싼 생선이었는데, 최근 연안국가들의 남획으로 개체수가 감소하면서 가격이 더 비싸지고 있다. 주로 제주도에서 많이 소비되는데, 제주 지역에서는 잔칫날이나 제삿날에 빠지면 안 되는 생선이다. 옥돔은 우리 나라 남해안과 제주도 그리고 일본 연안과 동중국해에서 주로 서식하며 무리를 지어 서식하는 물고기다. 자리돔은 농어목 자리돔과에 속하는 바다 어류의 일종으로 열대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고기이며, 우리 나라의 남해안과 제주도 그리고 일본 연안과 동중국해에서 주로 무리지어 서식한다. 제주 흑돼지는 2015317일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550호로 지정되었다. 일명 '똥돼지'로 많이 알려져 있으며, 화장실에서 키우는 돼지라는 뜻에서 '돗통시'라고도 불리었으나 1970년대 말에 재래식 변소 추방 운동이 전개되면서 더 이상 화장실에서 키우지 않는다. 과거에는 돔베고기라 불리는 제주도식 수육을 멜(멸치)젓에 찍어 먹는 방식이 대세였으나, 현재에는 삼겹살 구이가 더 인기 있다. 1995년 경에 돼지 껍데기가 있는 제주 흑돼지 삼겹살이 서울로 진출한 후 인기를 끌면서 '오겹살'이란 메뉴의 원조가 되었다. 제주 말은 제주 토종 말과 몽골 말이 섞여 지금의 조랑말이 되었다. 말고기에는 팔미톨레산과 아연이 풍부하여 혈당을 낮춰주고, 지방이 적어 칼로리가 낮고 단백질이 풍부한 고단백 저칼로리식 품이다. 또한 비타민은 돼지고기의 3, 쇠고기의 20배로 영양이 아주 풍부한 식품이다.

 

유네스코 지정 인류무형문화유산 해녀

인류 전체를 위하여 보호되어야 할 현저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일람표에 등록한 문화재를 말한다. 사회 일반 세계 유산 협약에 따라 유네스코에서 인류 전체를 위하여 보호해야 할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 문화유산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 나라에는 석굴암과 불국사(1995), 해인사 장경판전(1995), 종묘(1995) 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오랜 세월 이어 온 해녀문화의 가치와 보전을 인정하여 2016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해녀는 맨몸으로 바닷속 10m까지 내려가 전복, 성게, 소라 등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으로, 한 번 잠수할 때 약 1분간 숨을 참으며, 하루에 4~5시간, 1년에 약 90일 정도 물질을 한다. 물속에 들어갈 때에는 추위를 막아주는 잠수복(고무옷)에 오리발, 모자, 물안경, 장갑 그리고 깊이 잠수할 수 있게 돕는 납덩이를 허리에 착용한다.